10살 딸을 키우는 교포 싱글맘 이야기로 시작하는 치과의사 이정은(필명 반백수) 이야기...

치과의사가 환자를 처음 만나는 모습은 보통 어떨까?
체어에 누워서 환자 얼굴에 포를 씌운채로 입안부터 보는 바쁘고 성질 급한(?) 치과의사도 있을거고 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 옆에서 인사하는 친절한(?) 치과의사도 있을거고…다양하겠죠?
나를 만나러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충치나 있몸 치료 때문에 오는 분들은 많지 않다.
내가 하는 치료는 치아의 문제점을 치료하고 웃는 모습을 바꿔서 얼굴을 변화시켜주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환자가 편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 앞에 서서 주로 첫만남을 가진다. 환자의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치료이고 환자의 얼굴 뿐만 아닌 전체적인 분위기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얼굴을 먼저 보여드리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려는 사람임을 보여드려 두려움의 대상인 치과에서 긴장을 풀어 드리려고 하는 내 나름의 배려이기도 하다. 환자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게 되면 치료의 반은 성공이다.
하늘 아래 같은 환자는 없다. 보자마자 잃어버린 형제 자매처럼 케미가 터지는 환자도 있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은 환자도 있다. 모든 환자들이 나에게 인생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되기도 하고 때론 친구도 되기도 한다. 치과에서 만났지만 환자와 의사의 관계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끼리의 관계가 먼저라고 생각하기에 난 사실 환자의 입안보다 그 사람의 인생이 항상 궁금하다. 내가 하는 치료로 감히 환자의 인생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생각하기에 난 항상 환자를 환자로 보기 보다는 한사람으로서 많은 걸 알고자 노력한다.
이제 내가 소개하려고 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사실 그들의 인생이야기도 될 수 있겠다.
미니쉬하는 치과의사가 만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한다.

10살 딸을 키우는 교포 싱글맘 이야기
30대 초반 정도 보이는 그녀는 얼굴은 토종 한국인이지만 나와 인사할 때 바로 한국말이 서툴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말이 서툰 여느 교포나 유학생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슬픔과 불편함이 얼굴에서 느껴져서 내 서툰 영어가 그녀를 혹시 편하게 할까 싶어 영어로 다시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나의 영어를 듣고 너무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서 영어가 되는 의사를 만나기 힘들어 그동안 치료를 미뤘다고 했다. 소통의 문제도 있겠지만 타국에서 맘편히 치료를 받기란 여러모로 쉽지 않았을 것을 짐작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남편의 존재를 먼저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 정황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충북 제천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면서 10살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제천에서 서울까지 미니쉬 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녀의 얼굴과 치아에서 나는 그녀의 인생을 읽을 수 있었다.
젊지만 탄력을 잃은 피부와 웃고는 있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미소...
로션도 잘 안 바른 거친 손...
구토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부식된 치아...
이를 악물며 사느라 닳아진 치아...
그녀의 인생을 내가 감히 논할 수 있겠냐 만은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힘든 시간을 딸을 위해 버티고 이겨내고 이제 행복해지려고 내게 온 것만 같았다. 난 그녀에게 미니쉬 하면 더 행복해질거라고 했다. 그리고 딸에 대해, 미국에 살던 때는 어땠는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지 등등 그녀의 삶에 대해 그냥 이야기했다.
당신의 치아는 부식됐고,,,닳아졌고,,,시리고,,,,이런 이야기는 첫날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상태를 이미 사진으로 본 순간 문제의 심각성에 놀란 사람을 더 부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첫날에는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셨네요... 미니쉬 치료 하고 나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 했다.
그녀는 울었다.
그녀는 내 서툰 영어와 내 눈빛과 내 손짓으로 최선을 다해 그녀를 알고 싶어 하는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 실장한테 듣기론 다른 치과도 몇 군데 가보려 했는데. 적금을 깨서 미니쉬 치료를 하겠다고 했단다. 진료비는 그녀의 1년치 월급이라고 했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금요일 밤까지 일하고 토요일 일찍 버스를 3시간 타고 다시 택시를 30분 타고 나에게 왔다. 난 그녀의 딸이 혹시나 혼자 있을까 봐 걱정이 되서 물으면 치과에 데리고 와서 혼자 두는게 걱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몇 주간 계속 보면서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 아이를 갖고 한국 오자마자 남편이 떠난 이야기를 하나씩 해줬다. 한국의 다른 도시는 모르기에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영어 선생님 하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10년이 되었고 어느 날 거울에 30대인 본인이 50대 처럼 늙어 보여 너무 슬퍼서 미니쉬를 하려고 찾아 왔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용기를 내보고 싶다고 했다. 환자들은 의사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먼저 마음을 열기 어렵다. 안그래도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가 위축 될 수 밖에 없는 곳이니 말이다.
그녀는 점점 내게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말하듯 편하게 말하게 됐고. 치료를 받으면서 웃음이 편해져 안쓰던 얼굴 근육에 점점 탄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료를 무서워 하지 않고 편해지면서 치아 상태나 치료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진료실이 점점 편해지기 시작하니 진료 받으면서 계속 딸과 통화를 했다.
밥은 먹었는지… 숙제는 했는지… 감기약은 먹었는지… 등등...
난 그렇게 신경 쓸 바에 엄마 진료 받는 걸 같이 봐도 되니까 딸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딸을 계속 데리고 오지 않다가 모든 치료가 끝나고 체크 받으러 왔을때 드디어 딸을 데리고 왔다. 딸이지만 엄마의 치아 상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 엄마들은 딸이 엄마를 걱정하는 것을 원치 않지 않은가.
웃는 모습이 똑같은 그녀의 딸은 내가 엄마 칭찬을 많이 하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지랖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딸 앞에서 엄마를 치켜 세우는게 내가 그녀를 응원 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이었다. 나도 자식이 있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가 1년치 월급을 자신의 치료에 쓸 수 있는 건 정말 큰 결심이다. 그 치료를 위해 딸을 집에 두고 버스로 왕복 6시간이 걸린다면 더 더욱 큰 결심일 것이다.
난 그녀가 한 미니쉬 치료가 단순히 치과 치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길 진심으로 바랬고 그렇게 될것임을 믿었다. 왜냐하면 처음 만났을때 그녀의 미소 띤 얼굴이 슬퍼 보였고 고달퍼 보였지만 치료가 끝나고 딸과 함께 온 그녀의 미소는 다가올 행복을 다 받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보였기 때문이다
우린 1년에 한번씩 보기로 했다.
1년이 지났는데 안 오고 있는 그녀에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다.

10살 딸을 키우는 교포 싱글맘 이야기로 시작하는 치과의사 이정은(필명 반백수) 이야기...
치과의사가 환자를 처음 만나는 모습은 보통 어떨까?
체어에 누워서 환자 얼굴에 포를 씌운채로 입안부터 보는 바쁘고 성질 급한(?) 치과의사도 있을거고 체어에 앉아 있는 환자 옆에서 인사하는 친절한(?) 치과의사도 있을거고…다양하겠죠?
나를 만나러 오는 환자들은 대부분 충치나 있몸 치료 때문에 오는 분들은 많지 않다.
내가 하는 치료는 치아의 문제점을 치료하고 웃는 모습을 바꿔서 얼굴을 변화시켜주는 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환자가 편하게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선 앞에 서서 주로 첫만남을 가진다. 환자의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치료이고 환자의 얼굴 뿐만 아닌 전체적인 분위기로도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 얼굴을 먼저 보여드리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려는 사람임을 보여드려 두려움의 대상인 치과에서 긴장을 풀어 드리려고 하는 내 나름의 배려이기도 하다. 환자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게 되면 치료의 반은 성공이다.
하늘 아래 같은 환자는 없다. 보자마자 잃어버린 형제 자매처럼 케미가 터지는 환자도 있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은 환자도 있다. 모든 환자들이 나에게 인생을 가르쳐주는 스승이 되기도 하고 때론 친구도 되기도 한다. 치과에서 만났지만 환자와 의사의 관계보다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끼리의 관계가 먼저라고 생각하기에 난 사실 환자의 입안보다 그 사람의 인생이 항상 궁금하다. 내가 하는 치료로 감히 환자의 인생까지 바꿀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생각하기에 난 항상 환자를 환자로 보기 보다는 한사람으로서 많은 걸 알고자 노력한다.
이제 내가 소개하려고 하는 환자들의 이야기는 사실 그들의 인생이야기도 될 수 있겠다.
미니쉬하는 치과의사가 만난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시작한다.
10살 딸을 키우는 교포 싱글맘 이야기
30대 초반 정도 보이는 그녀는 얼굴은 토종 한국인이지만 나와 인사할 때 바로 한국말이 서툴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말이 서툰 여느 교포나 유학생들과는 좀 다른 느낌의 슬픔과 불편함이 얼굴에서 느껴져서 내 서툰 영어가 그녀를 혹시 편하게 할까 싶어 영어로 다시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나의 영어를 듣고 너무 안심이 된다고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에서 영어가 되는 의사를 만나기 힘들어 그동안 치료를 미뤘다고 했다. 소통의 문제도 있겠지만 타국에서 맘편히 치료를 받기란 여러모로 쉽지 않았을 것을 짐작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남편의 존재를 먼저 물어볼 수는 없었지만 여러 정황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충북 제천에서 영어 선생님을 하면서 10살 딸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제천에서 서울까지 미니쉬 치료를 받으러 왔다. 그녀의 얼굴과 치아에서 나는 그녀의 인생을 읽을 수 있었다.
젊지만 탄력을 잃은 피부와 웃고는 있지만 자연스럽지 않은 미소...
로션도 잘 안 바른 거친 손...
구토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부식된 치아...
이를 악물며 사느라 닳아진 치아...
그녀의 인생을 내가 감히 논할 수 있겠냐 만은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힘든 시간을 딸을 위해 버티고 이겨내고 이제 행복해지려고 내게 온 것만 같았다. 난 그녀에게 미니쉬 하면 더 행복해질거라고 했다. 그리고 딸에 대해, 미국에 살던 때는 어땠는지, 한국에서 일하는 것은 어떤지 등등 그녀의 삶에 대해 그냥 이야기했다.
당신의 치아는 부식됐고,,,닳아졌고,,,시리고,,,,이런 이야기는 첫날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본인의 상태를 이미 사진으로 본 순간 문제의 심각성에 놀란 사람을 더 부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첫날에는 그냥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사셨네요... 미니쉬 치료 하고 나면 인생이 바뀔 거라고 했다.
그녀는 울었다.
그녀는 내 서툰 영어와 내 눈빛과 내 손짓으로 최선을 다해 그녀를 알고 싶어 하는 나를 알아주는 것 같았다. 나중에 실장한테 듣기론 다른 치과도 몇 군데 가보려 했는데. 적금을 깨서 미니쉬 치료를 하겠다고 했단다. 진료비는 그녀의 1년치 월급이라고 했다.
그녀는 토요일마다 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금요일 밤까지 일하고 토요일 일찍 버스를 3시간 타고 다시 택시를 30분 타고 나에게 왔다. 난 그녀의 딸이 혹시나 혼자 있을까 봐 걱정이 되서 물으면 치과에 데리고 와서 혼자 두는게 걱정된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 몇 주간 계속 보면서 미국에서 남편을 만나 아이를 갖고 한국 오자마자 남편이 떠난 이야기를 하나씩 해줬다. 한국의 다른 도시는 모르기에 처음 자리 잡은 곳에서 영어 선생님 하면서 아이를 키우다 보니 10년이 되었고 어느 날 거울에 30대인 본인이 50대 처럼 늙어 보여 너무 슬퍼서 미니쉬를 하려고 찾아 왔고 다시 누군가를 만나는 용기를 내보고 싶다고 했다. 환자들은 의사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먼저 마음을 열기 어렵다. 안그래도 병원이라는 곳은 환자가 위축 될 수 밖에 없는 곳이니 말이다.
그녀는 점점 내게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말하듯 편하게 말하게 됐고. 치료를 받으면서 웃음이 편해져 안쓰던 얼굴 근육에 점점 탄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료를 무서워 하지 않고 편해지면서 치아 상태나 치료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진료실이 점점 편해지기 시작하니 진료 받으면서 계속 딸과 통화를 했다.
밥은 먹었는지… 숙제는 했는지… 감기약은 먹었는지… 등등...
난 그렇게 신경 쓸 바에 엄마 진료 받는 걸 같이 봐도 되니까 딸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딸을 계속 데리고 오지 않다가 모든 치료가 끝나고 체크 받으러 왔을때 드디어 딸을 데리고 왔다. 딸이지만 엄마의 치아 상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으리라 … 엄마들은 딸이 엄마를 걱정하는 것을 원치 않지 않은가.
웃는 모습이 똑같은 그녀의 딸은 내가 엄마 칭찬을 많이 하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지랖이라고 할수도 있지만 딸 앞에서 엄마를 치켜 세우는게 내가 그녀를 응원 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이었다. 나도 자식이 있지만 자식을 키우는 엄마가 1년치 월급을 자신의 치료에 쓸 수 있는 건 정말 큰 결심이다. 그 치료를 위해 딸을 집에 두고 버스로 왕복 6시간이 걸린다면 더 더욱 큰 결심일 것이다.
난 그녀가 한 미니쉬 치료가 단순히 치과 치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길 진심으로 바랬고 그렇게 될것임을 믿었다. 왜냐하면 처음 만났을때 그녀의 미소 띤 얼굴이 슬퍼 보였고 고달퍼 보였지만 치료가 끝나고 딸과 함께 온 그녀의 미소는 다가올 행복을 다 받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보였기 때문이다
우린 1년에 한번씩 보기로 했다.
1년이 지났는데 안 오고 있는 그녀에게 전화 한 번 해봐야겠다.